• Title 재미대한산악연맹ㆍ미주 중앙일보 합동 원정대
  • Name 백종춘
  • Date 05/28/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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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최고봉 ‘휘트니’에서 ‘호연지기’를 외치다
재미대한산악연맹ㆍ미주 중앙일보 합동 원정대
백종춘 기자(LA 중앙일보 사진부장)


캘리포니아 등줄기의 최고봉이자 미 본토 최고봉의 영예를 자랑하는 마운틴 휘트니(1만4505피트)를 지난 4월 북미연합 한인등반대가 그 상에 올라 미주 한인들의 기개를 드높였다. 재미대한산악연맹(회장 허훈도)이 주최하고 올해 창간 40주년을 맞은 미주 중앙일보가 후원한 ‘명산순례’ 행사가 휘트니산에서 열린 것. 재미산악연맹이 창립 20주년이 되던 2009년부터 시작된 명산순례는 그동안 와이오밍의 그랜드 티턴, 워싱턴의 마운트 레이니어, 가주의 마운트 샤스타, 유타의 팀파노고스 등 전국의 명산들에서 치러졌다. 올해는 뉴욕, 조지아, 시카고, 덴버, 시애틀 지부를 비롯해서 한국과 캐나다 등 11개 지역에서 60여 명이 대거 참여해 명실공히 미주 한인 산악인들을 하나로 묶는 끈끈한 만남의 장이 됐다.
산악인들의 로망으로 자리잡은 휘트니산은 395번 도로를 따라 남북으로 400마일에 걸쳐 뻗어 있는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최고봉이다. 서쪽으로는 요세미티와 킹스캐년 세코이아 국립공원을, 동쪽으로는 데쓰 밸리를 굽어 보는 백설의 준봉이다. 일년 중 한 두 달을 빼고는 항상 머리에 눈을 인채 쉽사리 등정의 영예를 허락하지 않기로도 유명한 곳이다.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풍우, 삽시간에 주위를 하얗게 지워버리는 안개 등과 함께 최고의 복병은 고소증이다. 그래서 이들의 단결된 도전과 용기가 더욱 빛나는 것이다.
왕년에는 내로라 하던 산쟁이었지만 이미 70줄에 들어선 대선배부터 이제 한창 물이 오른 40대까지 연령대도 다양하다. 부부도 여섯 쌍이 끼었다. 사는 곳도, 하는 일도 다른데다 일년에 한번 정도 꾸려지는 등반대지만 정상을 향한 투지와 도전정신은 캠프장을 밝히는 보름달만큼이나 밝고도 선명했다. 전국에서 LA로 모인 산악인들은 지난 16일 출발지인 이스턴 시에라의 론파인 캠프장에 집결, 코스 공략 브리핑과 식량 배급이 이어졌다. 동계등반 코스로 애용되는 마운티니어즈 루트는 사전 답사 후 안전상의 이유로 메인 루트로 바뀌었다. 이튿날은 베이스 캠프가 될 아웃포스트 캠프까지 길고 힘든 일정이다.
크램폰, 피켈, 헬멧 등 개인용 동계장비에다 캠핑장비와 사흘치 식량까지 배낭에 눌러 넣으니 40파운드가 훌쩍 넘어간다. 예정된 3.8마일에다 겨우내 도로에 굴러 떨어진 낙석을 치우지 않아 도로를 막는 바람에 덤으로 아스팔트길 4마일이 추가됐다. 길도 없는 눈길을 헤쳐 얼추 8시간만에 1만 400피트까지 수직고도를 4000피트를 올리고 나니, 머리는 지끈거리고 몸은 물 먹은 솜처럼 가라앉기만 한다.

 


뜬눈으로 새우다시피 하다 분주한 소란에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시애틀의 유동혁(63)씨를 비롯해서 대부분 산행준비를 마친 상태다. 이미 열 번을 올랐으니 이번은 그의 열 한번째 도전이다. 워싱턴 주의 최고봉인 레이니어는 이미 수십 차례나 올라 나이를 무색하게 한다. 다부진 체격과 눈매는 청년의 그것과 다름이 없다. 메릴랜드에서 참가한 임상철(62)씨 내외는 마라톤으로 다져진 체력을 바탕으로 존 뮤어 트레일과 파타고니아 트레일을 섭렵했다. 레이니어와 그랜드 티턴 등 고산 등반에 열정을 쏟은 조지아 주의 한상기(70)씨는 영원한 현역임을 몸으로 웅변한다. 뉴욕 한미산악회(회장 박상윤)는 페루 와스카란 원정을 앞두고 고소적응 훈련차 18명이나 참가했다. 반딧불이처럼 헤드랜턴이 눈길을 밝히는 고된 등반이 시작됐다. 놋숟갈 같은 차가운 달빛 아래 휘트니의 연봉들이 공룡처럼 웅크리고 있다. 머리는 지끈거리고, 속은 메스껍다. 거친 숨소리와 크램폰 소리만이 정적을 깨뜨릴 뿐 아무도 말이 없다. 동틀녘에 드디어 1만 2000피트 고도의 트레일 캠프에 이르렀다. 지금부터 이번 등반의 최대고비가 될 급경사의 설벽이 시작된다. 고갯마루인 트레일 크레스트(1만 3700피트)까지는 2.2마일의 스위치백이 이어지지만 동계등반에서는 설벽을 오르게 되는 것이다. 현기증으로 눈길 둘 곳 없는 아찔한 설벽을 올라서니, 발 아래 세코이아 국립공원의 장쾌한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거친 숨결을 고르자니, 주저앉고 싶어진다. 하지만 아직도 정상까지는 2.8마일이 남아 있다. 아슬아슬한 트레일에 눈이 얼어 붙어있어 위험하기 짝이 없다. 한 발자국의 실수로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만다. 겨우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너덜지대로 접어드는데, 선두의 일행들이 정상에 섰노라고 무전이 온다. 차가운 돌풍과 함께 갑자기 싸락눈이 얼굴을 때리고, 정상은 이미 폭풍우에 휩싸여 거리를 가늠할 수 조차 없다. 산행에서의 가장 중요한 순간이 다가온다. 일몰까지 남은 시간과 날씨, 대원들의 체력 등을 고려해서 아쉽지만 후발대원들은 정상을 눈앞에 두고 돌아서기로 한다. “정상은 옵션(optional)이지만, 생환은 필수(mandatory)”라 하지 않았던가. 모든 대원들이 무사히 베이스캠프로 돌아온 시각은 오후 6시 30분, 열 다섯 시간만이다. 이날 정상에는 11명의 대원이 올랐다.